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로스 3세 (문단 편집) == 여담 ==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의 모델이 된 왕이 바로 그라고 전해진다.[* 쌍각왕이란 호칭의 쌍뿔 → 귀.] 사실 원전인 [[그리스 신화]] 쪽에서는 그 이야기의 모델이 [[미다스]] 왕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정복 과정에서 해당 신화가 전해지면서 그 주인공도 알렉산드로스로 변했다. * 알렉산드로스는 그 유명한 [[록사나]]와 결혼하기 전에 아주 아끼는 애인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캄파스페(Campaspe)라는 여인으로, 그녀의 젊을 적 몸매와 미모는 대왕이 흠뻑 빠질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어느날 알렉산드로스는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그림으로 기록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신의 전속 화가에게 의뢰를 맡기는데 그 화가가 바로 고대 그리스 [[극사실주의]]의 대가로 유명한 아펠레스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만 두 사람이 정분이 나고 말았고 어느 날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NTR|가장 아꼈던 화가와 가장 총애한 애인의 정분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압권인 것은 알렉산드로스가 물론 분노하긴 했으나 그들을 결국 용서함과 동시에 아펠레스에게 가장 사랑했던 애인까지 넘겨주는 쿨하다 못해 얼어죽을 거 같은 냉정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후대에 "[[박물지]]"를 펴낸 고대 로마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는 이 일화를 기록하며 "대왕은 화가에게 여인을 선물로 하사했다. 위대한 대왕의 너그러운 천성 덕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대왕의 자제심은 더욱 위대했고 그의 관대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이 거뒀던 어떠한 다른 대승에 견주어 모자람 없는 위대한 업을 이뤄냈다!"라고 평하였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rmada0219&logNo=5004012204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iyamazi1957&logNo=220490497744|#]] * 《[[탈무드]]》에서도 등장하는데, 유대인들이 믿는 정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그에게 쓰레기 속에 있던 금덩이의 일화를 듣고는 "나라면 그 둘을 모두 죽이고 내가 그 금덩이를 차지하겠다. 그게 나의 정의다."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유대인]] 입장에서 쓴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타 지역과 민족을 정복하면서 보여준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유대 지역은 그들 자신의 [[야훼]] 신앙을 알렉산드로스의 후계 [[디아도코이]] 국가 중 하나였던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부정당하고 탄압을 심하게 받은 적이 있어 헬라계 지배자들에게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성경 내에는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보거든"이라는 관용구가 나오는데, 이게 무려 유대인들의 성전인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다가 [[제우스]] 신상을 세운 것을 의미한다. 당장 [[유다 마카베오]]가 평생 대항하고 싸운 것도 이 셀레우코스 계통의 [[헬라인]] 정권이었고,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거의 1930년대의 [[민족 말살 통치기|민족 말살 정책]]을 펴던 [[일제강점기]] 말기 시기에 갖게 된 원한과 거의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그 셀레우코스를 쫓아냈더니 찾아온 것이 [[로마 제국]]이었고 결국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기에 그의 장남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한 번 더 불타게 된다.] * 상기한 대로 아랍어권에서는 '이스칸다르'로 넘어갔는데, 이것이 [[오스만 제국]] 시기 알바니아 출신의 명장에게 별명(이스칸다르 베이)으로 붙여졌고, 이 명장이 알바니아 독립운동을 이끌면서 현지어로 별칭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스칸데르베그]]이며, 이 명장이 [[제르지 카스트리오티]]다. *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인도 문화권에는 '스칸다'라는 별칭이 있는 토착 군신 [[무루간]]이 있었고, 위의 이스칸다르와 융합하여 인도에서 군신으로 섬겨지지 않았나 하는 학설이 있다. 참고로 이 스칸다는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색건타', 다시 줄여서[* 색건타의 색(塞)은 변방이란 뜻이 있으므로 중국인 입장에선 '저 먼 땅의 건타'로 받아들인듯.] '건타'가 되었고 이를 오독하여 '위타', 거기에 신격을 나타내는 천(天)을 붙여서 '[[위타천]]'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https://arca.live/b/singbung/75520075|정리글]] * 로마 원수정과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좋아하지 않은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조차 극찬한, 고결한 황태자이자 장군 [[게르마니쿠스]]가 많이 비견된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절대적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따라서 고대 로마인들에게 있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교되면서 버금간다, 못지않다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로마 남성들에게 큰 칭찬이자 극찬이었다. 물론 이때 로마인들은 이렇게 알렉산더 대왕을 극찬하면서도, 게르마니쿠스 평가의 사례처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부모와 동생에 대한 인격적 완성은 그렇지 않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휼륭했다."라고 평가했다. *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의 군인황제 [[카라칼라]]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무척 동경하고 사랑한 [[정복군주]]였다. 그는 대왕처럼 군사적 재능이 천부적 천재는 아니었지만, 군사적 업적이 대단했고 군사적 재능 역시 역대 [[로마 황제]] 중 매우 뛰어났다. 카라칼라는 늘 대왕이 했다는 모든 것을 따라하고 그가 방문했다는 곳을 행군 중 반드시 들렸다. 따라서 당대 로마의 학자, 관료이자 역사가 [[헤로디아누스]]나 당대 [[원로원]] 의원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동경하는 것을 넘어 지나칠 정도로 대왕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고 전한다. *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어린 시절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매우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젊은 나이에 제위에 올라 [[콘스탄티노폴리스]] 및 많은 영토를 정복하여 비슷하게 '''[[정복자]]'''로 불리는 대업적을 이루었다. * 성인이 된 알렉산드로스는 이마에 큰 [[흉터]]가 났는데, 아무래도 전쟁 과정에서 생긴 후천적인 상해로 추정된다. 일단 알렉산드로스 본인이 [[전쟁광]]이기도 했다. 어느 날 대왕이 화가를 궁전으로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명령했는데, 화가가 고심 끝에 대왕이 이마를 손으로 지그시 괸 채 사색을 하는 아주 근사한 초상화를 그려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칭찬을 받고 본인도 명성이 높아졌다는 야사가 있을 정도로 대왕의 흉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 어려서부터 [[얼음]]을 자주 먹었다는 야사가 있다. 정확하게는 고대의 디저트류로, [[꿀]]과 화밀([[넥타르]])로 맛을 낸 [[빙수|간 얼음]]을 즐겼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